“간호사가 돼서도 배우지 못해요“ 간호대 실습의 내실

신예진 기자

서울여자간호대 최지윤 씨는 봄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신청했다. 240시간의 고된 실습 때문이다. 병원현장에 익숙해지기 위해 간호대 학생은 3학년부터 배당된 대학병원으로 실습을 간다. 하지만 겉핥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화여대 간호학부 4학년 박정연 씨(22)는 “실습동안 간호대학생은 병풍이에요.”라며 한숨을 토했다.

실무는 어디서 배우나요?” 간호대학생 실습의 현실

한국 대학은 간호 진단을 하고 간호 과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실습을 진행한다. 대상 과목으로는 성인간호학, 여성건강간호학, 아동간호학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환자복이나 이불을 정리하고, 시간이 지나도 맥박이나 호흡을 재는 업무만 주어진다. 생식기 병동의 진료에는 참여하지 못하기도 한다. 의료인이 아닌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환자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불만사항이 접수되기 때문이다.

환자 치료만으로도 바쁜 의료진에게 모르는 사항을 쉽게 물어볼 수도 없다. 때문에 간호사를 따라다니고, 단순 업무를 반복해 필수로 지정된 1000시간을 채운다. 최 씨 또한 바이탈 측정으로 실습 시간 대부분을 채웠다. 하지만 그는 바이탈 측정 실무가 1000시간이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사진1> 2013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서 발표한 실습병원 확보의 어려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다. 각 간호대학의 전공과목 및 복수전공 교수가 설문에 응했다. (출처=한국전문대학교교육협의회)

경복대 간호학과 방초희 교수(35)는 시간 채우기식 실습이 이뤄지는 이유로 ‘실습 기관의 부족’을 꼽았다. 간호학과 학생 수는 증가하고 개인이 이수해야 하는 실습은 1000시간에 달한다. 하지만 병원 환경이 여유롭지 않아 간호대학생의 실습을 전담하는 간호사도 없다. 환경이 이렇다보니 대부분 병원이 학생을 받더라도 관찰 위주로 실습을 진행한다.

간호사가 돼도 마찬가지, 실무 교육 부족의 결과

졸업 후 신규간호사가 돼서도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학부 때 실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긴박한 현장에도 적응이 쉽지 않다. 기존 간호사에게 질문하면 학교에서 뭘 배우고 왔냐는 대답을 듣기도 한다. 기존 간호사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다.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환경 속 신규 간호사의 트레이닝도 부담일 뿐이다.

이런 근무환경은 태움 문제(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정신적ㆍ육체적 괴롭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올해로 20년차인 유미경 간호사(48)는 태움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력문제를 꼽았다. 유 간호사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트레이닝 받은 간호사가 후배에게 같은 환경을 대물림해 생기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의료산업노동연맹에 따르면 한국 간호사 1명은 약 16.3명의 환자를 배정받는다.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의 수가 과도하게 많아 세심한 관리도 힘들다. 결국 간호사가 돼서도 기존 간호사에게 실무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표 1> ▲ 간호사가 이직하는 원인을 5점 상대점수로 표현했다. 응답자 3,887명에게 19개의 항목을 제시하고 각 요소별로 5점 척도의 상대점수로 응답하게 했다. 임금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나타났고 과도한 업무량이 그이 그 뒤를 잇는다.(출처=한국 보건 산업 진흥원)

하지만 인력 문제는 갈수록 더 심화된다. 한국 보건 산업 진흥원의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매년 새로 배출되는 간호사의 수보다 일을 그만두는 간호사의 수가 더 많다. 대한간호협회의 설문조사 결과 신규 간호사의 62.6%가 이직할 의도가 있다고 밝혔다. 퇴직 사유로는 임금 부족, 3교대, 야간근무 같은 열악한 업무 환경이 있다.

지난 7월 7일 지역보건법시행규칙 원안관철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역보건법의 보건직 공무원 대상자를 간호조무사까지로 확대하자는 성명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경복대 간호학과 방초희 교수는 열악한 업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간호 인력만 늘림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는 간호사와 간호대학생

“한국에 있었다면 계속 간호사의 꿈을 꾸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미국 미네소타대 간호학부에 재학 중인 이지현 씨(21)는 미국 간호사를 준비 중이다. 이 씨는 비효율적인 실습을 하고 고강도의 업무환경을 견뎌야 하는 한국보다 간호 환경이 좋은 미국에서 간호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한국보다 앞서 인력부족 문제를 경험한 미국은 ‘간호사 안전인력배치법(Nurse Staffing Levels Act)’을 제정했다. 해당 법률은 간호사를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간호학 교수를 양성하는 간호사 재투자법(Nurse Reinvestment Act)을 포함한다. 또한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간호사가 맡는 환자 수를 제한한다. 간호사를 존중하는 제도와 인식 덕에 많은 간호사와 간호대학생이 이 씨처럼 미국 이주를 결정한다.

<사진 2> ▲ 미국 병동에서 근무하는 외국 간호사의 비율을 나타낸 도표다. 한국인 간호사의 수는 5번째로 많다. (출처=U.S department health and human sources and service administrator)

미국 간호대생은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교육을 받는다. 실습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시뮬레이션 수업을 통과한 이후에 투입된다. 정맥 주사를 놓는 법이나 약을 구분하는 법과 같은 기초적인 내용을 학교에서 미리 배워 학생은 빠르게 병원 현장에 적응한다.

실습은 한국의 절반정도인 약 500시간에 불과하지만 질적인 교육에 초점을 둔다. 학교에서 배정한 일명 ‘크리니컬 간호사’가 약 4명의 학생을 맡는다. 병동 간호사와 크리니컬 간호사가 학생을 돕고 교육한다. 대학생이 아닌 예비 의료인으로서 실습에 참여한다.

병원은 환자 중심으로 운영된다. 미국 병동에서 간호사가 맡는 환자 수는 1명당 최대 6명으로 한국에 비해 10명이나 적다. 중환자실은 2명이 최대다. 환자 상태가 불안정할 때는 간호사 2명이 1명의 환자를 맡기도 한다.

간호사에 대한 인식도 한국과 다르다. 간호사는 의사의 보조가 아닌 또 다른 전문인이다. 특히 중환자실에서는 의사보다 간호사가 주축이 되기도 한다. 미국 내 간호사는 선호 직군이 됐으며, 직업 만족도 역시 높아졌다.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하는 타국 간호사도 많아졌다. 한국 간호사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유타대 간호학부 강유정 교수(46)는 한국에서의 간호사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병동 생활을 거친 끝에 간호학과 교수가 됐다. 그는 의사의 보조가 아닌 환자를 위한 전문 의료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민을 결심했다.

제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도 변화해야

지난 3월 정부는 간호사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 대책을 마련했다. 신규 간호사를 교육할 수 있도록 전담 간호사를 배치하고,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역량도 강화하기로 계획했다. 또한 인력확대를 위해서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병상 수에서 환자 수로 개선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야간근무 수당을 보장받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선된 정책에 대해 15년차 양정의 간호사(40)는 “이론적 매뉴얼 강조와 간호사 인원 증가에 머물러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부가 마련한 대책이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기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양 간호사는 간호 환경을 바꾸는 시작 단계가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밝히기도 했다.

간호사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이화여대 간호학부 4학년 박정연 씨(22)는 실습 도중 대중 매체 속 간호사의 모습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환자를 만난 경험이 있다. 그는 “미디어에서 나오는 간호사처럼 간호사는 의사 처방 따라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대부분 콘텐츠 속 간호사는 의사 조직의 하위 집단으로, 의사를 보조하는 수동적인 역할이다.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김영욱 교수는 미디어의 직업묘사는 사회적인 편견을 확대 및 재생산해 사람들이 직업을 바라보는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미디어의 왜곡된 묘사로 인해 간호사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강화되기도 한다.

7년차 이연경 간호사 (31)는 여전히 병원에서 자신을 아가씨라 부르는 환자를 만난다. “간호사를 서비스직이나 의사의 보조로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해요.” 21년 차 간호사 류근숙 씨(50)는 간호사를 전문인이라는 개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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