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프리사이즈의 기준이 뭔가요?” 규제 없는 의류사이즈로 불편함을 겪는 소비자들

김정현 기자

<사진1> ▲2020년 2월 초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국내 의류의 표준 사이즈 지정과 관련해 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올해 2월 3일, ‘국내 의류의 치수를 표준화하는 법을 제정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의류의 치수가 모호하게 제시돼 소비자가 구매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약 5,200명이 이에 공감해 청원에 참여했다.

청원에는 ‘프리사이즈’로 표시된 옷 치수가 쇼핑몰마다 제각각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프리사이즈’를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의 평균 체형에 맞도록 만들어진 옷이나 모자 따위의 치수’로, 참여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은 ‘옷 치수 중에서 모든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치수’로 정의한다. ‘프리사이즈’의 뜻조차 명확하지 않은 까닭에, 쇼핑몰마다 제시하는 ‘프리사이즈’의 기준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사진2> ▲같은 ‘프리사이즈’로 판매중인 셔츠이지만 총 길이가 10cm가량 차이난다. (출처=에이블리)

현재 온라인 쇼핑몰에서 프리사이즈로 판매 중인 제품 3개를 무작위로 선택해 상세 치수를 비교했다. 누구나 입을 수 있다는 뜻이 무색하게 각 제품의 총길이는 모두 달랐고, 심할 경우 10cm 이상 차이가 났다. 팔길이, 어깨, 가슴둘레 역시 마찬가지다. 셔츠, 니트, 후드티와 같이 옷의 종류와 관계없이 길이 차이가 있었다.

같은 브랜드 내 같은 사이즈로 표기가 된 제품도 치수 차이가 심해 문제다. 하나의 브랜드에서 동일 카테고리 제품 3개를 무작위로 선정해 상세 치수를 비교했다. 같은 L 사이즈로 표기됐음에도 어깨너비와 소매길이에서 7cm나 차이 나는 제품이 있었다.

의류 품명총장어깨너비가슴단면소매길이
A70.55961.560.5
B70.5516367.5
C69.55961.557.5
<표1 > 특정 브랜드의 동일 카테고리 내에서 무작위로 택한 3개 제품의 L 사이즈 상세정보 (출처=무신사 홈페이지)

그렇다면 사이즈가 지정된 옷의 치수는 일정할까? 패션 온라인 커머스 기업인 ‘무신사’에서 무작위로 6개의 브랜드를 택해, 남성용으로 판매하는 후드티의 상세 사이즈를 확인했다. 옷의 사이즈 표현이 ‘1, 2’, ‘S, M, L’, ‘M, L’ 등으로 통일되지 않았다. 어떤 옷은 가장 작은 사이즈를 S로, 또 다른 옷은 M으로 표기했다. 상세 치수도 마찬가지였다. 어깨너비의 경우 16cm, 소매길이는 11cm까지 차이가 났다.

브랜드가장 작은 사이즈총장어깨너비가슴단면소매길이
AL68575958
BS68625756
CM716165.564
DM68525460
ES67475563
FM70635853
<표2 > ‘무신사’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6개의 브랜드 내 남성 후드티 치수와 사이즈를 비교한 결과. 가장 작은 치수를 표시하는 방법이 제각각이며, 각 제품 사이의 오차도 존재한다. (출처=무신사 홈페이지)

일산에 있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며 온라인 쇼핑을 자주하는 김재우 군(19)은 불명확한 사이즈 분류로 인해 사이즈를 선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같은 M사이즈라고 마음 놓고 구매할 수 없어요. 상세 치수만으로 옷이 잘 맞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고요” 실제로 그는 오랜 고민 끝에 구매한 옷임에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교환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성인 남성복의 치수(표준번호 KS K 0050)’와 ‘성인 여성복의 치수(표준번호 KS K 0051)’ 기준을 통해 옷의 종류에 따라 ‘85, 90, 95’ 또는 ‘S, M, L’로 표기 방법을 규정한다. 표기된 사이즈에 해당하는 키, 허리둘레의 상세치수도 함께 적혀있다. 하지만 이는 제안된 사이즈 규정일 뿐 온라인 쇼핑몰을 규제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다. 결국 같은 표기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상세 치수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국 소비자 연맹 강정화 회장(63)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총장, 어깨너비와 같은 상세정보를 제공하면 표기 방식이 일정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이즈의 오차로 인해 소비자가 겪는 불편함에 대해서는 “직접 제품을 확인할 수 없는 전자상거래의 원천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의류 산업의 특성상 국가가 나서서 사이즈나 상세 정보 제공 방식을 규제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기술표준원 신상훈 사무관은 “의류 치수에 대한 규정을 제시하긴 하지만 의류는 창의성이 가미될 수밖에 없어 국가에서 규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세정보마저 확실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화여대 과학교육과에 재학 중인 엄세원 씨(25)는 온라인에서 제시된 상세정보가 실제 옷의 치수와 달라 구매한 옷을 입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인터넷으로 하는 거래이기에 상세정보를 하나씩 확인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 제공한 정보와 달라서 옷을 못 입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세 사진이 미흡해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상세 사진은 의류의 색감, 재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해당 의류를 입은 모델 사진을 통해 소비자의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옷의 일부를 보이지 않도록 촬영해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기도 한다. 하나의 사진을 사진 속 모델이 착용한 모든 의류 상세 사진에 공통으로 사용하고 각 각의 의류의 상세 사진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 역시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화여대 재학 중인 김서연 씨(22)는 최근 온라인을 통해 셔츠를 구매하며 사진이 옷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 불편함을 겪었다. “상세 치수로는 사이즈가 맞을지 감이 오지 않아 상세 사진을 확인했는데 모든 사진에서 셔츠를 하의 안으로 넣어 입어서 길이를 가늠할 수 없었어요” 결국 김 씨는 예상과 다른 옷을 사게 됐다. 온라인으로 옷을 자주 구매하는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재학 중인 이예경 씨(20) 역시 “옷의 디테일을 확인하기 위해 상세 사진을 확인하는데 쇼핑몰 사진인지 화보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사진의 개수나 사진 속 정보량의 부족을 느낀다는 이유로 위법이 성립하지도 않는다. 소비자보호법 제 3조 2항은 물품 및 용역을 선택하면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규정하지만, 구체적인 정보량에 대한 규제는 없어 정보량을 지정할 수도 없다.

<사진3> ▲인터파크에서 판매 중인 의류의 반품/교환 안내이다. (출처=인터파크 홈페이지)

한국 소비자 연맹 강정화 회장은 소비자가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단순 변심이라도 7일 이내에 반품할 수 있는 권리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환을 위한 왕복 배송비 역시 부담이다. 뿐만 아니라 교환이나 반품에 터무니없이 높은 배송비가 책정돼있기도 하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에서 판매 중인 의류는 해외 직배송을 이유로 구매 시에는 무료배송임에도 불구하고, 옷 가격의 50%가 넘는 반품 배송비가 책정돼있다.

<사진4> ▲통계청 「온라인쇼핑동향조사」에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온라인 쇼핑몰 상에서 의복 거래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통계청 홈페이지)

이런 불편함에도 온라인에서의 의류 거래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의류 거래액은 2017년 약 11조 8,000억 원에서 2019년 약 14억 4,000억으로 2년 동안 120% 이상 증가했다. 직접 오프라인 쇼핑몰을 돌아다니지 않고도 손쉽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온라인 쇼핑몰만의 편리함 덕분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신체 사이즈 추천 기능이나 구매자 후기를 통한 사이즈 추천, ‘다양한 신체 사이즈의 모델 사진 제공, 가지고 있는 상품과의 간편 비교 기능을 탑재한 쇼핑몰이 증가하고 있다. 실패할 확률이 높아 온라인 구매를 꺼리는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예림 씨(23)는 사이즈 추천기능과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특정 쇼핑몰을 통해서는 마음 놓고 구매한다. “소비자가 이런 쇼핑몰을 많이 이용한다면 다른 많은 쇼핑몰 또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진6> ▲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은 무료 반품서비스를 시행했다. (출처=쿠팡 홈페이지)

소비자의 교환 및 반품 배송비 부담을 줄여 더 간편한 온라인 쇼핑을 가능하게 하는 업계의 노력도 눈에 보인다.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은 무료배송과 무료반품 서비스를 시행한다. 쇼핑 플랫폼인 G마켓의 패밀리사이트인 G9에서는 반품 배송비를 결제했을 경우, 물품 구매시 사용할 수 있는 ‘스마일캐시’로 돌려준다.

부당한 거래를 하지 않기 위한 소비자의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한국 소비자 연맹 강정화 회장은 “정보가 부족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반복적으로 구매를 하면, 사업자는 자신이 정보를 부족하게 제공해도 소비자가 구매한다고 생각해 거래행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며 소비자의 신중한 구매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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