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투성이, 갈길 먼 ‘맞춤형’ 대학생 주거 복지 제도

유지원 기자

일명 “지·옥·고”,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축약하는 말이다. 지옥고를 전전하는 청년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옥고(地獄+苦)”라는 단어의 어감 그대로 생활환경은 처참하다. 방은 좁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청년 실업률이 10%에 달할 만큼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 세대는 주거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제도적인 노력에도, 지원 대상 애매해

청년의 주거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자 각 정당은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총선 공약으로 주거 청년가구의 주거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의 주거 기본권 보장 정책’을, 정의당은 “주거 지원 수당”을 제시했다.

<사진 1> ▲ 더불어민주당 총선 청년 부문 3호 공약(출처=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더불어민주당의 청년 주거 기본권 보장 정책은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공공 기숙사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충하겠다는 내용이다. 정의당은 19세~29세에 해당하는 청년 중 중위소득 120% 이하에 해당하는 월세 거주자를 대상으로 일정한 주거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두 공약 모두 청년층에게 보다 나은 주거환경 제공이 목적이다. 두 공약 모두 ‘청년’을 한 바구니 안에 넣는다. 하지만 청년은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에 있는 계층이기 때문에 같은 ‘청년’이라 할지라도 처한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모두가 ‘청년’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이유로 정책 수혜자를 명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현행 제도에서도 정책 수혜자가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LH 토지주택공사에서 운영하는 청년매입임대주택 제도의 신청 자격은 ‘만 19세에서 39세 미만의 청년’이다. LH 토지주택공사 이소민 대리는 “복지제도의 사업 수혜 대상 지정 시 소득 및 생애주기를 기준으로 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청년’이라는 큰 카테고리 탓에 신청자는 많아지고, 경쟁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주거복지 기준이 각 주체가 처한 상황을 기준으로 마련돼야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청년주거제도를 선도적으로 운영하는 LH 토지주택공사 측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당 문제를 인지하고, 주택 유형에 따라 입주 자격에 차이를 두거나 우선순위를 도입함으로써 선정 기준을 다르게 마련해 문제를 보완할 뿐이다.

대학생청년이 직면한 주거문제는?

애매한 기준에 가장 힘든 건 대학생이다. 대학생은 성인이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상 일정한 소득이 없고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취를 하고 있더라도 단독 세대주로 인정되지 않고 부모에게 속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관련 주거 보장 제도에서도 배제되기 일쑤다.

정기적인 소득이 없는 탓에 고액의 자취 비용을 부담하기도 어렵다. 인터넷 부동산 플랫폼 다방의 데이터분석센터에 따르면 2019년 2월 기준 서울 주요 대학가의 원룸 시세는 보증금 1,000만 원, 전용면적 33㎡(대학가 원룸 평균 평수 8~9평을 전용면적으로 환산한 기준)이하 원룸 기준으로 54만원이다. 관리비를 포함하면 월 60만원을 웃도는 금액을 주거비용으로 소비해야 한다. 또, 최소 500만 원 이상의 목돈을 보증금으로 납부해야하기 때문에 목돈을 마련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대학생의 경우 자취방을 구하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에 직면한다.

<사진 2> ▲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월세 시세(출처=다방)

최근 자취방을 구한 대구교대 2학년 최승혜 씨(21)는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겨우 예산에 맞는 집을 구했다. “보증금으로 목돈이 들어가다 보니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선 불가능하겠더라고요” 최 씨는 지방인 대구에서 방을 구하는 일도 힘들었는데 서울이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학생 신분으로 주거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시간도 상당하다. 2018년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산업동향&이슈 보고서는 2018년 청년층의 최종학교 졸업/중퇴 후 첫 취업(임금근로자) 평균 소요기간은 10.7개월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졸(3년제 이하 포함) 청년의 평균 졸업 소요기간은 4년 2.7개월임을 고려할 때, 대학생이 취업 전까지 정기적인 소득 없이 주거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시간은 3~4년에 달한다. 그야말로 ‘부모 찬스’를 쓰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충남대 사회복지학과 안은솔 씨(22)는 자취를 시작한 뒤로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왔다.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서다. “아르바이트를 학업과 병행하기 힘들어서 주거 보조금 제도를 알아봤는데, 제가 단독 세대주로 인정되지 않아서 소용없더라고요”

단독 세대주가 아니어서 여러 제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대학생은 작은 혜택이라도 받기 위해 또 다른 주거복지제도를 찾는다. LH 토지주택공사와 SH 서울도시주택공사에서 시행하는 공공임대주택 사업과 주택보조금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공공임대주택, 수요와 공급의 부조화는 여전해

서강대 경제학과 재학생 민부경 씨(23)는 지난 해 3월 약 1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LH 토지주택공사에서 시행하는 행복주택에 당첨됐다. 지원조건도 까다롭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복잡하지만 민 씨는 당첨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민 씨가 해당 제도에 만족한 가장 큰 이유는 비용에 있다. 행복주택 입주 전 자취를 했던 민 씨는 서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모님께 손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행복 주택에 입주한 이후로 마음의 짐을 덜었다.

비용 절감이라는 큰 장점이 있지만 주거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수요와 공급의 부조화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2018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발표한 행복주택 청약 경쟁률에 따르면, 울산송정지구와 김해율하지구는 0.7:1을 기록한 반면, 대학이 밀집된 서울 공릉의 경우 경쟁률은 99.4:1을 기록했다.

<사진 3> ▲ 2018년 행복주택 지역별 경쟁률(자료출처=LH, 표=유지원 기자)

공급된 가구 수는 비슷한데 지원한 사람 수는 지역마다 천차만별이었던 탓이다. 지역별 균형적인 공급을 위함이라는 목적에서 비롯된 정책이지만 국민의 실질적인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공공임대주택 당첨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공공임대주택의 한계, 주거비용지원으로 보완할 수 있을까?

임대주택의 공급 자체가 부족해 주거 급여와 같은 주거비용지원제도를 찾기도 한다. 현재 주거급여의 일환으로 ‘전월세비용 지원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주로 저소득층 지원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주거 빈곤 문제에 직면한 사람의 수가 늘어나자 정부는 주거급여 지원 기준을 2020년 대폭 완화했다.

기준이 되는 소득인정액을 중위소득 45%까지 확대했고, 지원금도 작년에 비해 임대료 14.3%, 수선비용 21%를 인상했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점이다. 따라서 대학생도 부모와는 별개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소득이 없는 대학생에 대한 지원은 부모의 능력을 핑계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주거 복지 서비스를 소개하는 마이홈포털에 문의해 본 결과, 만 30세 이하 청년의 경우 세대 법에 따라 부모와 같은 세대로 묶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가를 소유하고 있을 경우 월세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무리 사정이 어렵더라도 부모가 자가를 소유하고 있다면 신청조차 할 수 없다.

LH에서 시행하는 전세주택 지원금 제도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의 경우 9천만 원에서 최대 1.2억 원까지 지원 가능하지만, 시중에 전세 매물이 별로 없다는 문제가 있다. 또, 집주인이 전세보다는 월세가 더 수익이 된다는 이유로 전세 임대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해당 제도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LH 홍보실 이소민 대리는 공사 측에서도 위와 같은 상황을 인지해 주택 물색과 관련한 제반사항을 지원하는 ‘주택물색 도우미 제도’나 ‘전세임대포털’과 같은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생들에게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울산과학대 IT응용기술학부 김유진 씨(22)는 자취방을 구하면서 주택물색 도우미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제도가 있는 줄 알았다면 이용했을텐데, LH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뭐가 너무 많아서 찾기 어렵더라고요”

계명대학교 법학과 문현지 씨(22)는 의식주 기본마저도 걱정해야 하는 삶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젊을 때 하고 싶은 일 해보라고, 뭐가 그렇게 용기가 없냐고들 말하지만 다 기본적인 것들이 보장돼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죠”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들이 기본권에 대한 걱정 없이 도전하고,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은 국가 발전의 첫 걸음과도 같다. 국가 차원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청년을 위한 복지정책이 ‘맞춤형’ 정책으로 탄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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