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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사웹진
신예진 기자
젠더 프리 캐스팅은 배역의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를 선정한다.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이라고도 불리는 해당 캐스팅은 생물학적 남성의 역할을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의 역할을 남성이 연기해 배우의 배역 선택 폭을 넓힌다. 작년 8월 연극 <오펀스>가 개봉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연극 <적벽>이 재개봉했다. 두 연극은 모두 젠더 프리 캐스팅을 통해 진행됐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영국의 연극 ‘햄릿’의 제작진이 연극계의 여성 배역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2017년에 도입했다. ‘햄릿’이 성황리에 끝나자 독일 <네로파>, 미국 <헤드윅>에서도 시도했다. 한국은 ‘미투 운동’ 이후 성평등 의식을 높이기 위해 해당 캐스팅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 결과 2017년부터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한 연극이 늘기 시작했다.
연극계 내부에서 관객까지: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의 영향력
연극 <적벽>은 중국의 위·촉·오 시대를 배경으로, 남성 배역 중심의 서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기존 연극과 달리 재개봉한 후에는 남성 배역인 제갈량, 조자룡, 주류를 여성 배우가 연기했다. 연극 <오펀스>도 개봉 당시인 2017년과 달리 재개봉 과정에서 주인공 트릿, 해럴드, 필립 배역을 여성으로 캐스팅했다.
젠더 프리 공연은 국내에서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2017년 언론에 소개된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광화문연가> 등을 시작으로 2019년엔 <비평가>, <오만과 편견>, <해적>, <적벽>,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과 같이 다양한 연극이 성별과 관계없이 배역을 정했다.
연극 <적벽>의 연출 정호붕 씨(56)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목받는 젠더프리극은 관객이 다양한 컨텐츠를 만날 기회가 돼요”라고 말했다. 관객이 기존 연극과 달리 여성 배우가 해석하는 남성과 남성 배우가 해석하는 여성을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극 자체의 해석도 다양해졌다. 연극은 배우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극의 진행이 달라지는데, 해당 작품에서는 고정돼있던 배역의 성별이 전환돼 보다 극이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정 씨는 배우들 역시 성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관객에게도 콘텐츠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배역의 성별 고정관념을 깨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이 많다. 지난 10월 연극 <오펀스>를 본 대학생 강정은 씨(21)는 남성 배역을 여성 배우가 소화하는 모습에서 조금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았다. 기존 연극에서 여성은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대부분이었지만 젠더 프리 연극에서는 갱스터나 도둑처럼 여성 배우가 시도하지 않은 입체적인 역할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연극의 배역에 있어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찬희 씨(20)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젠더 프리 연극을 처음 접했다. 김 씨는 ‘젠더 프리’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지만 연극을 본 후 다른 연극도 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성별이 바뀌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거부감없이 다가와서 신선했어요”
대학로에서 시작한 젠더 블라인드 공연, 이제는 대학교의 정규 수업으로 자리잡아
이화여자대학교 총연극회는 지난 8월 젠더 프리 연극으로 불리는 젠더 블라인드 연극 <맨끝줄 소년>을 공연했다. 그동안 이화여대 총연극회는 주로 여성 서사 위주의 연극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성 서사극에도 도전했다. 모든 남성 배역을 여성 배우가 맡으면서 젠더 프리 캐스팅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한 셈이다.
연극에 배우로 참여한 경영학과 박수현 씨(20)는 대학로에서 젠더 블라인드 연극이 늘면서 아마추어 여성 배우도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아졌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여성 서사 위주의 연극을 찾았다면 지금은 젠더 블라인드로 연극을 하면서 극을 새롭게 구성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박 씨는 “남성 배역을 여성 캐릭터로 올릴 때 달라지는 배역의 해석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돼요”라고 말했다.
대학 수업에서도 젠더 프리 연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한도영 씨(20)는 수업에서 젠더 프리 공연을 배우며 배역에 대한 이분법적인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수업에서 흔히 남성의 배역이라고 인식되는 배역을 여성이 맡고, 여성의 배역을 남성이 맡을 때 극의 새로운 매력과 생동감을 준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박연수 씨(21)도 학교 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젠더 프리 연극을 접했다. 박 씨는 젠더 프리 연극을 고전을 재해석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받아들였다. 현재는 성별과 관계없는 캐스팅 자체가 화제성을 부르는 단계다. “일시적 화제성에 주목하기보다 기존과 다른 연극을 앞으로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배웠어요”
연극 그 자체로의 젠더 프리 캐스팅
‘극’이라는 장르는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 중에서 연극은 현장에서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특성 덕에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이화여대 인문예술 미디어 학부 이소희 교수(44)에 따르면 연극은 행동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예술이다. 나아가 의견을 형성하고 정치적으로 저항하는 사회적인 예술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젠더 프리 연극을 통해 현대 사회에 필요한 성평등 의식과 젠더 감수성에 대해 피력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수진 칼럼니스트(49)는 상대의 성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젠더 프리 연극은 기존의 연극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젠더 프리 연극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더 깊이 이해하고, 오랫동안 이어진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탈피할 때 완성된다. 따라서 젠더 프리 공연을 성 역할 반전의 신선함을 위한 극적 요소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성별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공연을 바라봐야 한다. 이 칼럼니스트는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깊은 이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이소희 교수는 “배역을 모든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파악할 때 젠더 프리 공연의 의의를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