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등장했던 개인안심번호, 조용히 사라지다

강주하 기자

지난 2월부터 시행된 ‘개인안심번호’ 제도가 사실상 폐지됐다. 활발한 홍보 없이 조용히 등장했던 제도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다른 제도들에 밀려났다.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

코로나19 확산 이후, 다중이용시설에 출입할 때마다 출입자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수기명부에는 휴대전화번호를 적어야 했다. 그러나 방역에 협조하기 위해 작성한 휴대전화번호는 방역에만 사용되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경험담들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다. 수기명부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계속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중 개인안심번호가 등장했다. 개인안심번호는 수기명부에 휴대전화번호 대신 기재하도록 만들어진 번호다. 개인안심번호를 명부에 기재하면 해당 시설에 역학조사를 진행할 때 방역당국에서 휴대전화번호로 변환한다. 방역당국 외 일반인은 개인안심번호만으로 연락할 수 없다.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좋은 제도, 그러나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개인안심번호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난 2월부터 약 5개월 간 시행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낯선 제도였다. 개인안심번호를 알아도 사용하기 쉽지 않다. 이화여자대학교 유하연 씨(20)는 개인안심번호에 대해 알고 있지만 사용해본 적은 없다. 개인안심번호의 존재는 5월쯤 네이버 어플리케이션으로 QR체크인을 하려다 알게 됐다. 그는 명부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내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인터넷 글을 보며 명부를 작성할 때마다 찝찝해했다. 개인안심번호는 그런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화번호를 여기저기 적으면서 정보가 제대로 파기됐을까 내심 걱정했다. 그렇기에 개인안심번호 제도를 반갑게 여겼다. 하지만 제도를 활용한 적은 없다. 그는 평소 정책에 관심이 많아 빠르게 접하는 편이지만 개인안심번호는 시행된 지 두 달 넘게 지나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거의 모른다며 홍보가 잘 안된 것 같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제도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으니 매번 개인안심번호를 설명하는 번거로움 대신 전화번호 작성을 택했다.

사실상 사라져가는 제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관내 업소에 대해 개인안심번호보다 QR 체크인과 콜 체크인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 미추홀구청 안전총괄과 안전기획팀)

개인안심번호의 활용도는 저조하다. 그러나 지자체 자체적으로 실행하는 홍보는 없었다. 지자체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관교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했다. 행정복지센터조차 변경된 수기명부 양식을 활용하고 있지 않았다. 관련 안내도 전무했다. 송철 주무관은 현재 미추홀구에서는 수기 명부를 사용하지 않고 QR 체크인과 콜 체크인으로만 운영을 하려고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상위부처에서 수기명부의 양식을 변경하고 안심번호를 작성할 수 있게 하라는 공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공지는 했지만 업소가 워낙 많다보니 전달이 미흡해 여전히 이전 양식을 쓰는 업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개인안심번호에 대한 지원은 특별히 없었다. 대신 콜 체크인에 대한 지원만 늘리고 있다. 콜 체크인은 약 10,000개 사업장에 지원하고 있다. 개인안심번호의 사용을 늘리라는 정부의 권고도 없고, 사용하는 사람도 없으니 지자체에서는 다른 방법을 도입했다.

예산이 없던 정책,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다

저조한 활용도로 지자체에서는 개인안심번호 활용보다 다른 제도를 지원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본 제도의 도입 당시 홍보 자료를 통해 개인안심번호의 도입이 개인정보 유출 방지 효과를 높일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제도에 대해 알지 못했다.

▲2021년 2월 유튜브 ‘개인정보위TV’ 채널에 게시된 개인안심번호 홍보영상. 이밖에 ‘개인안심번호 누가 만들었을까?’, ‘개인안심번호 너로 정했어!!!’ 등의 영상이 게시돼있다. (출처 = 유튜브 개인정보위TV)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총괄과 반장권 사무관은 “개인안심번호에 할당된 홍보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다른 업무에 할당된 예산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홍보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언론사 인터뷰, 전광판 홍보, 유관기관 SNS에 카드뉴스·동영상 배포, 지자체 및 우체국에 포스터 6만부 배포가 그 예다. 개인안심번호는 코로나19의 확산과 수기명부에 기재하는 개인정보 관련 문제가 확산되며 갑작스럽게 생긴 정책이다. 따라, 활당된 홍보비가 없다. 한 정책이 국민에게 널리 알려질 만큼 홍보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예산과 역량을 필요로 한다. 반 사무관은 예산 부족 문제가 개인안심번호의 홍보에 있어 큰 문제였음을 이야기했다. 예산이 넉넉지 않으니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가 불가능했다.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예산 부족만이 원인은 아닐 수도

반 사무관은 개인안심번호뿐만 아니라 기존의 업무에도 홍보비는 극히 적은 편이라고 이야기했다. 정책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이 필요하다. 현실은 예산 부족으로 제도를 만들어놓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하지만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김태윤 교수(60)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정책이 국민에게 호응 받지 못했다면 좋은 정책일 리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홍보 예산이 부족해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좋은 정책임에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고 보는 건 무리라는 의견이다. 그는 정책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요건, 예를 들면 믿을 만한지, 효과가 있을지 등에서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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