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배제 페미니즘의 첨병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성”은 영원할까

조은지 기자

<사진 1 ▲> 트랜스젠더 연예인 1호 하리수의 데뷔 CF, 도도 앤 컴퍼니 – 빨간통 패니아 ‘새빨간 거짓말’ (출처: 광고고전 유튜브)

2001년 세상이 뒤집혔다.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 하리수가 데뷔하면서다. 그는 화장품 광고로 국내 첫 트랜스젠더 연예인이 됐다. ‘누가 봐도 미녀인데 침을 꼴깍 삼키자 튀어나온 남성의 상징인 목젖’을 가진 모델의 등장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광고였다. 그 여파는 당시 트랜스젠더를 다룬 기사 수의 증가로 확인할 수 있다. 뉴스 빅테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의 ‘트랜스젠더’ 검색결과는 2000년 7건에서  2001년 421건으로 크게 늘었다.

트랜스젠더가 서있을 곳은 어디에

하리수의 데뷔 이후 트랜스젠더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며 제도적 변화도 생겼다. 2006년에는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2008년에는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로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법안 작성 단계에 트랜스젠더인권단체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차별금지법은 최초발의 이후 18년이 지난 오늘까지 반대로 인해 제정되지 못했으나 이후 발의된 11개의 법안에는 모두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로 포함하고 있다. 이승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는 연구논문 ‘트랜스젠더 차별과 차별금지법의 쟁점: 차별금지사유를 중심으로’에서  차별금지법을 통한 소수자 보호의 장점을 설명했다. 트랜스젠더는 의료, 공공시설 이용, 가족제도 등의 정책대상으로 포섭되고 있지 않다. 수요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적인 통계도 없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은 정책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2▲> 6개 여대의 23개 페미니즘 단체는 연합성명서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에서 트랜스젠더 합격자의 여대 입학을 반대하며 성별변경 허가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출처: ‘성별변경 반대 성명문’ 구글드라이브)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실존한다. 그 예가 2020년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숙명여대에 합격 포기 선언 사건이다. A씨는 성전환 수술을 받고 성별정정을 허가받은 뒤 숙명여대 법과대학 정시전형에 최종합격 했다. A씨의 합격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소재 6개 여대의 23개 페미니즘 단체(여대 단체 연합)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연합 성명서를 내놓고 서명을 받았다. 서명 인원은 성명서 게시 12시간 만에 1만 명을 돌파했다. 성명서에는 “성별변경은 성별로 인해 실질적 차별을 받는 ‘여자’들의 피해사실을 흐리게 하며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누구든 여자들의 공간을 침범하고 기회를 빼앗아 갈 수 있게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반대 서명의 중심에는 여대 내 래디컬 페미니스트 동아리가 있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터프(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여대 단체 연합의 성명서에 인용된 학자 쉴라 제프리스가 터프 입장을 취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 서적 전문 출판사 열다북스가 그의 저서 ‘젠더는 해롭다’(2019)를 번역해 출판했다.

‘젠더는 해롭다’ 속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 공간에 침입해 여성을 위협하는 존재, 트랜스젠더 남성은 가부장제의 혜택을 위해 남자가 되는 것을 선택한 존재다. 특히 ‘성적 만족을 위해 종속적인 지위에 놓인 여성 신체를 택하는’ 트랜스여성이 주된 비판 대상이다. 따라서 터프의 관점에서 트랜스젠더는 여성의 낮은 지위를 영속화하는 존재로서 페미니즘의 실천에 해가 되는 존재다. 이는 트랜스젠더와 함께 하는 페미니즘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생물학적 여성’만이 페미니즘의 주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

<사진 3 ▲> 혜화역 시위 운영진이 유튜브에서 ‘생물학적 여성’만 시위에 참여가능하다고 안내한 이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출처: 불편한 용기 유튜브)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성’이라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현장은 2018년 ‘혜화역 시위’다. 혜화역 시위는 ‘홍대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그동안 여성 대상 불법촬영은 눈감아 온 경찰이 여성에 의해 남성 피해자가 발생하자 심각한 범죄로 규정짓고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동일범죄, 동일처벌’,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혜화역 시위에는 1차부터 6차(5월19일~12월22일)까지 주최 측 추산 35만 7,000명이 참여했다. 시위 참여조건은 ‘생물학적 여성’일 것. 참여자들은 모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근접 취재 역시 여성 기자에게만 허락했다. 시위를 주최한 ‘불편한 용기’의 운영진은 2018년 12월 21일 유튜브 채널에서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은) 배제의 단어가 아니”라며 “시위에 온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참여조건을 설정한 이유를 밝혔다.

<사진 4, 5 ▲> 인터넷상에서 유포된 트랜스젠더에 관한 허위조작정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여성 전용 공간에 들어와 여성을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블로그, 바른인권여성연합)

 

<사진 6 ▲> X(구 트위터)에서 격렬한 논쟁이 된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발언 (출처: X)

시위 이후에도 ‘생물학적 여성’은 트랜스젠더 여성과 비트랜스젠더 여성 사이의 선을 긋는 조건으로 사용되고 있다. 트랜스젠더 혹은 트랜스젠더인 척하는 남성이 시위 현장을 넘어 여자 대학, 여자 화장실 등의 여성 공간을 침범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보명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2020년 논문 ‘『여성 공간』과 페미니즘 –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배제를 중심으로’에서 트랜스여성을 향한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 강남역 사건부터 디지털 성범죄까지.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필요했던 중요한 사건들이다. 이렇듯  위협받는 여성들의 현실은 안전을 위해 여성만의 공간과 연대의 필요성을 외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가짜’로 간주하며 “여성의 안전과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주장은 이주민에 반대하는 백인 시민, 임신중지와 성소수자 인권에 반대하는 논리와도 비슷하다.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SNS인 X(구 트위터)에서도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 공간을 침해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에 대한 분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차별금지이 제정되면 여탕에 트랜스젠더(거나 그런 척 하는 남성)가 들어올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홈페이지 Q&A 창에서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특정 성별로 꾸미고 속여 ‘침입’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트랜스젠더의 여성공간 출입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차별금지법은) 여성과 소수자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먼저 나서고 사회 전체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법”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2025년 미국의 한 간호대학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남지윤 씨(23)는 트랜스여성 환자를 처음으로 만났다. 환자진료기록의 특이사항을 보고 알았다. 성중립적인 대명사인 ‘They/Them’로 불러주길 원한다는 점도 적혀있었다. 남 씨는 “한국에서도 환자의 생물학적 성별이나 성전환 수술여부와는 관계없이 안전하고 차별없는 의료환경과 일상생활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건 없는 여성으로 확장될 수 있는 논의

1977년 발표된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문’은 “우리는 흑인 남성과 함께 인종차별에 맞선다. 동시에 우리는 성차별에 맞서 남성과 싸운다”고 말한다. 과거 서구 페미니즘은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여성을 기본값으로 진행됐다. 레즈비언, 유색인종 여성을 모두 포괄하기는 쉽지 않았다. 1990년대가 돼서야 다양한 여성의 정체성을 포괄하는 교차성 페미니즘이 활발히 얘기됐다. 그 결과 페미니즘은 다양한 측면에서 복잡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제로 확장됐다. 이 과정은 현재의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말을 두고 일어난 터프와 트랜스젠더 사이 논쟁과도 닮아있다.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연구원은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성’이라는 말은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기반해 여성성에 관한 논의를 축소시킨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본질주의는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속성이 있다고 가정한다. ‘여성의 몸으로 경험한 여성의 삶’만이 진정한 여성의 삶이라는 논리가 그 예다. 루인 연구원은 “태어났을 때 여성으로 지정받은 사람과 여성으로 지정받은 사람에게 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 때문에 ‘여성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여성 개개인의 경험은 생물학적 성별 뿐만 아니라 인종, 장애, 소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레거시 미디어 속 트랜스여성은 PD가 보여주고 싶은 단편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개인 방송이나 현실의 삶에서 만나는 트랜스여성의 삶은 훨씬 복합적이다. 병원에서 호르몬을 맞고, 성형수술을 받는 모습과 함께 굵직한 목소리로 웃음을 주는 등 구체적이고 복잡한 삶이 있는 존재다.  대학생 김도연 씨(23)도 몇몇 사건을 통해 논쟁으로만 트랜스젠더를 접하던 때는 다수가 느끼는 불안감에 동조했으나 더 많은 트랜스젠더 친구를 사귀고 페미니즘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며 김씨의 생각이 바뀌었다. 김씨는 “여성혐오를 ‘남녀갈등’이라고 표현하면 엄밀히 틀린 표현이 되듯,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대부분의 방식은 혐오에 불과하다”며 “페미니즘의 성해방적, 성별규범 해체적인 면을 생각했을 때 트랜스 담론을 배제한 페미니즘은 본질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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